늦여름, 오후 어느 날에
조소영
그 덥던 여름, 끝을 잡고
늘어진 오후 어느 날 보랏빛 도라지 등에
잠자리 날아와 앉았다
여리고 가냘픔이 어쩜 이리도 똑 닮았는지
서로 기댄 여름날 그림자를 고요히 바위에 새길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련한 여유가
투영되어 앉았다
그 덥던 여름, 끝을 잡고
오후 어느 날 잠자리 호숫가 키 작은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여름날 무더위를 늘어뜨린 그림자는
사책을 즐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호수에 반영되어 비추고
그림자 걸터앉아 길게 하품을 한다
그 덥던 여름, 침묵의 기다림
끝자락에선 유년시절 오후 어느 날
아마도 사월이었을까
우물 둥지 손바닥 만한 밭, 하얀 대파 꽃 그리움이
만발을 하고 그때 보았던 풍경 속 벌들
귓전에서 노는데
그 덥던 여름 끝자락, 오후 어느 날에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 되고
가슴 가득 차오르는 그리움 꺼내어 곱씹으니
어느덧, 잠자리 투명한 날개에서도
가을이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