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약서-자신을 더 아껴주세요-
나현수
불을 계속 지폈던 건
당신이 언제 올지 몰랐던 이유였습니다
확실한 이별이었다면 껐을 불인데
인연의 선을 긋지 않고 떠난 빈 자리를
차마
차갑게 식혀 놓을 순 없었습니다.
공간의 온도는 사람의 수에 비례합니다
당신이 비어버린 자리의 체온은
그만큼의 연료를 지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체온 36.9℃
0.1℃의 온기를 올리는 데에도
불길은 쉼 없이 타올라야 했습니다.
늦은 오후로 갈수록 체온은 높아졌지만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자정에 체온
은 급격히 내려가 아침까지 이어집니다.
이제
마음의 계약해약서를 보냅니다.
이방은 당신이 필요할 때 찾는 곳이 아
닌 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나의 방
잘 가세요
추억하지 않습니다
어제가 마지막 남은 추억을 땔감으로 사용한
아름다운 종결의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