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존재하는 시간
나현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펜을 들었지만
한 문장이 써지지 않아 쓰고 지웠던 때
별빛과 풀벌레 소리로 가득 찬 밤은 느릿하게 흘렀고
그곳엔 당신과 내가 있었다.
지금은 편지가 오지 않은 시대
우편물은 등기와 택배가 종종 오고
당신과 나 사이에는 휴대폰이 있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건
펜이 아닌 충전기와 콘센트.
메신저를 통해 전하는 소식에는
가끔씩 오타가 섞이어 있고
짧은 문장 안에 사랑은 없으며
편지를 쓰기 위해 필요했던 설렘의 시간은
다른 해야 할 일로 채워진다.
가까워진 소식만큼 사랑이 멀어지는 시대
그래서 몸은 멀쩡해도
마음이 불구가 되는 시대.
휴대폰을 밀어두고 펜을 든다.
이렇게 가끔씩 편지를 써볼까 한다.
편지를 전하고 받아들일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가 존재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때 아닌 풀벌레 소리 들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