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
원의 시(나현수)
인연이란 건 인력이 발생한 것일 테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느끼지 못한 자력이
어느 때 어느 공간에서 만나서 발생하는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일 테다.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가 비를 부르기 때문.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아주 아득한 때부터 채워지길 바라는
비를 원하는 누군가의 마음이었을 테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서 채워간 추억들이
처음은 메마름을 극복하기 위한 이유였다면
이후 갈증이 다 채워진 우리는
무엇으로 만나야 할까.
촉촉한 대지에 필요한 건
계속되는 비가 아닐 테다.
서로의 마음이 자라는 조건도
계속되는 비는 아닐 테다.
가끔 건조해져도 괜찮다는 믿음
식물이 자랄 때 계속되는 비가 식물을 죽이 듯
가끔 건조해진 마음이
우리가 뿌린 씨앗을 키우는 과정임을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않는다.
너무 성급해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의 씨앗을 죽이지 않은 일.
너무 많은 비와
너무 건조해진 가뭄이 아닌
촉촉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
그 간격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일 테니.